검색결과
' 시민군'에 대한 통합 검색 결과 : 전체 5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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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사료 2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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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여러분![시민군 협조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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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984921
날짜 : 1980.05.25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연세대학교
요약설명 :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시민군에게 적극 협조를 부탁하는 내용이 수록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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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교교사도 총들고 시민군에 합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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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025238
날짜 : 1994.05.26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윤영규
요약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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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회보(호외)-광주 시민군의 후예답게 지금 거리 거리로 나와 '노태우 퇴진'을 외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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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00419627
날짜 : 1991.05.19
구분 : 문서류 > 문서
기증자 : 청주도시산업선교회
요약설명 : - 박승희양 오늘 12시 35분 사망! - 강경대 열사 장례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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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료 2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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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사료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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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사료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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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콘텐츠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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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과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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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된 여학생을 둘러싸고 울부짖었다. 시민군의 저항이 치열해지자, 이날 자정 무렵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물러갔다. 나흘 동안의 항전 끝에 도청을 접수한 시민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계엄군들이 버리고 간 잡동사니들을 말끔히 청소했다. 22일 아침, YWCA로 출근한 조아라는 홍남순 변호사와 연락을 한 뒤 남동성당 김성용 신부를 찾아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조아라를 비롯한 재야인사들은 기독병원과 적십자병원 등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부상자를 돌보고 사망자 처리를 위한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조아라는 이애신 총무와 김경천, 안희옥 등 Y의 여러 간사들에게 쌀이나 라면 등 구호품을 모아 오게 하여, 도움이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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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이 길어올린 불멸의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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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있었다. 시민군들은 총을 들고 스스로 광주를 지켰다. 시외전화가 차단된 고립무원이었지만 양보와 배려와 존중이 도시를 지탱해 주었다. 시민들은 피로 얼룩진 거리 곳곳을 쓸고 닦으며 청소를 했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 도청 앞 상무관에 마련된 빈소에는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시신들을 모셔 둔 관이 즐비했다. 분향하러 온 시민들은 긴 줄을 이루었고, 여고생들은 흰 국화꽃을 바치며 훌쩍였다. 김준태는 빈소를 나오면서 ‘신은 죽었다’며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시를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대인시장이나 양동시장의 상인들은 가게 문을 닫고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병원에서는 부상자를 위한 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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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쟁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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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설명 : 사랑은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따른 이도 있었다. 광주항쟁 당시 홍순권은 시민군과 함께 도청을 지키다가 계엄군에게 살해당했다. 그는 세차장에서 일하면서 광주 북동지부에서 JOC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항쟁이 발생한 초기부터 참여하여 온갖 궂은 일을 해냈는데 시신 염습일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JOC 회원들과 도청 취사반, 수혈반 등으로 항쟁에 참여하다가,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앞 상무관에서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문규현 신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지옥 같지만, 거기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그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며, 세상을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하느님이 계시고, 그 삶이 희망이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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